독자에게 쓰는 편지
글 이용민(빅이슈 판매원)
그림 최해경(재능기부)
출처 빅이슈 42호
서울역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빅이슈 판매원 모집 전단지를 보며 독자님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분들일까?
빅이슈 판매원을 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얼음으로 보였고, 세상은 빙하시대였습니다. 겁먹은 아기 새가 둥지에서 첫 비행을 하듯 《빅이슈》를 찾았고, 1년 넘게 독자님들과 소통하며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상처받은 대인기피 증상이 치유됐고, 그늘졌던 얼굴이 점점 펴졌으며, 거친 말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눔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저는 지금 인격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독자님은 조각가이자 조각칼이시죠. 다듬어주시고 따뜻함을 스며들게 하며 사회 일원으로 부족함 없게 저를 조각하시고 계십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호쾌한 채찍질이 부족합니다. 독자님 말 한 마디로 높이 있는 해를 가리라 하시면 해와 가장 가까운 산에 올라가서 손발로 해를 가리겠습니다.
소통의 길목은 트위터에서 시작됐습니다. 타임라인 열독이 취미가 됐고 소개팅에서의 떨림 같은 독자님과의 멘션은 압권이죠. 길거리 흡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트윗을 읽고 1년 동안 길거리에서 흡연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길고양이에 대한 글을 보고 저도 길고양이에 관심이 생겨 훗날 입양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신 독자님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악의가 유혹하면 독자님들을 생각하며 외면할 것이고, 다시는 노숙의 길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세상은 빙하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해변에 있는 모래알 숫자만큼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8월 2일, 새벽 2시 5분
명동역 빅판
판매지 명동 눈스퀘어 앞
트위터 @bigissue_h
* 명동역 빅판은 너무 말라서 ‘멸치’라는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림 재능기부자의 한 마디
“짙고 푸른 물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멸치는 ‘세상의 빙하’가 녹아내린 명동역에서 독자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소통하는 명동역 빅판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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