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영민 사진 이승훈 (재능기부) Thinking Bus《빅이슈》82호 (4월 15일자 발행)
"버스는 작은 영화관입니다"
서울 중구와 은평구를 잇는 7011번 녹색 버스에 어느 날 갑자기 ‘간판’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통학 버스’나 ‘만원 버스’도 아니고, ‘간판’이라니. 뜬금없는 이 별명은 ‘생각버스(Thinking Bus) 프로젝트’ 팀의 작품이다. 이 팀은 서울 버스 노선을 꼼꼼히 살펴서 하나의 특징을 잡아낸다. ‘쉼표’(1020번), ‘노래’(143번), ‘낭만’(472번) 이런 식이다. 이렇게 뽑아낸 키워드는 해당 버스 노선 곳곳에 숨겨진 여행지, 맛집, 볼거리 등이 실린 약 2절지 한 장짜리 잡지가 된다. 남들과 다르게 버스를 이용하는 <생각버스>의 이혜림, 이예연 씨를 만났다.
왜 만들었나? 이혜림(이하 림)_ 우리 둘 다 통학 길에 버스를 주로 탄다. 지하철은 밖을 거의 못 보는데, 버스는 밖을 볼 수도 있고 지루하지 않아서다. 버스가 재미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게다가 서울시가 2004년부터 런던의 ‘빨간 버스’처럼 색깔별로 개편한 버스에선 어떤 문화 키워드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밌으면 둘만 알고 넘어가도 될 텐데. 왜 굳이… 이예연(이하 연)_ 스마트폰이 나온 뒤로 대중교통의 분위기가 너무 건조해진 것 같다. 이런 아쉬움이 제안으로 바뀐 거다. 우리가 버스를 타며 발견한 것들을 우리 방식으로 엮어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이전부터 우리만의 콘텐츠를 풀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버스에서 생각 좀 해보자’며 시작한 ‘생각버스 프로젝트’는 2012년 9월 472번 버스를 대상으로 창간호를 냈다. 이들은 472번 버스에 ‘낭만’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압구정, 명동, 신촌 등지를 지나는 이 버스에 낭만이라니?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472번 버스는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다. 과거 12번 좌석버스일 때는 운행 요금이 비싸 ‘노블리안 리무진’, 한때는 오렌지족이 많이 탄다고 해 ‘오렌지 버스’로도 불렸으나, 현재는 간선버스로 바뀌면서 가난한 청춘들의 발이 돼주고 있다. 또 이화여대를 지나는 이 버스는 여성 승객이 많아 ‘여탕버스’, ‘꽃마차’로 불리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472번버스의 또 다른 매력은 서울의 극명하게 다른 두 곳을 가로지른다는 점이다. 버스 시작점에서는 최신식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거리와 초고층 건물을 볼수 있는가 하면, 종점인 신촌 대학가로 향하면 한층 자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버스마다 ‘낭만’, ‘간판’, ‘시간’ 같은 키워드를 붙였던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 림_ 노선마다 다르다. 노선이 원형인 110번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 두 가지로 운행되니까 시계와 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계 방향은 미래로 나가는 시간, 반시계 방향은 과거를 들춰보는 시간, 이런 식으로. 143번은 ‘강남스타일’처럼 지역명이 들어가는 노래에서 착안했다. 그런 노래를 많이 담을 수 있는 노선을 찾아서 만들어진 경우. 어떤 때는 주제를 먼저 정하지만, 어떤 때는 버스를 먼저 정하기도 한다.
만드는 데 돈도 드는데 왜 공짜로 나눠주나? 림_ <생각버스>는 특정 계층만 보는 게 아니다. 서울에 있는 버스를 다루고 서울 전체를 다루는 거다. 그러다 보니 무료로 배포되는 편집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비는 어떻게 해결하나? 연_ 창간호는 우리가 아르바이트했던 출판사 사장님께서 인쇄비를 도와주셨다. 이후에는 텀블벅 (창의적인 프로젝트 기획을 내고 대중의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했다.
림_ 창간 초기와 1주년 기념호 때 두 번 썼다. 이후로는 유가지나 단행본을 만들어 얻은 수익으로 꾸준히 만들고 있다. 주변에서 “돈도 안 되는 일 그만하고 취업준비 하라”고 안 하나?
연_ 혜림이와 난 ‘미래에 조금 독립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 우리의 목소리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처음엔 정말 막연했는데, 이 일을 통해 나중에 할 것에 대한 구상도 빨라지고 계획도 할 수 있게 됐다. ‘생각버스 프로젝트’를 미래와 동떨어져 시간 낭비하는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림_ 우리는 버스 자체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서울에 대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 계획이니까 다들 뭐라 하지 않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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