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버스에는 삶이 타고 있습니다 : 심야버스 막차 타는 사람들
글 이영민 사진 이승훈 (재능기부) 《빅이슈》82호 (4월 15일자 발행)
서울시 심야버스 시범 운영이 시작된 게 지난해 4월이다. 다들 자는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는 시민을 위해 대중교통을 운행하겠다는 것. “취객들이 타는 버스가 과연 안전할까”부터 “시가 나서서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존을 방해한다”까지 다양한 말이 나왔다.1년이 지났다. 심야버스는 여전히 잠든 서울 도심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 N26번과 N37번 두 개뿐이던 노선이 지금은 9개로 늘었다. ‘올빼미 버스’라는 이름이 생겼고, 하루 평균 6천 79명(지난해 11월 기준)이 이용한다고 했다.
심야버스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버스다. 첫차가 날짜가 넘어가는 자정 무렵에 각 차고지에서 일제히 출발한다. 노선당 버스는 총 여섯 대. 버스 한 대는 출발지에서 시작해 회차점을 찍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식으로 하루 한 번씩 운행한다. 막차까지 운행을 마치는 시간이 오전 5시 무렵이니, 밤새 달리고 동 트기 직전 물러나는 셈이다.
한밤중에만 달리는 이 버스를 과연 누가 탈까? 하루 평균 1천 200여 명이 탄다는 N26번, 그중에서도 막차를 일주일간 타봤다.
“밤은 늘 무섭도록 조용하다. 오래된 트럭의 낡고 시끄러운 엔진소리, 도 경계선을 지나면서 주파수가 바뀐 채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 담배를 피울 때 열었다가 다시 올리지 않은 창문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의 굉음소리에도 불구하고, 트럭 안은 완벽한 정적이다” —김인숙, <밤의 고속도로> 중에서
버스 도착 전광판 시계가 새벽 3시 35분을 가리켰다. 도로변에는 택시 1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다리는 일을 반쯤 포기한 듯한 운전기사들은 택시 밖으로 나와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거나 담배를 피웠다.
14-011.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합정역에 있는 중앙 분리대 버스 정류장 두 곳 중 신촌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가 서는 곳이다. 정류장에는 1 1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버스가 오는 방향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남성은 연방 하품을 했다.
11분 뒤 N26번 버스가 왔다. 신촌 방향으로 가는 막차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좌석 28개 중 2개만 비어 있었다. 버스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졸고 있는 한 남성 승객 얼굴에 핀 검버섯이 뚜렷하게 보였다. 8명의 승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두툼한 가방에 머플러를 두른 중년 여성이 재빨리 자리를 차지했다. 여성은 가방을 등에 멨던 가방을 품에 안았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남성들은 손잡이에 축 늘어진 채로 매달렸다.
버스는 잠든 도심을 질주했다. 가로등 사이로 상점의 간판들이 검은 캔버스에 말라붙은 물감 같은 질감을 드러냈다. 24시간 편의점과 PC방 간판만이 밤의 한복판에서 음흉한 눈빛을 번뜩였다. 차들은 도로를 청소하는 차가 물로 씻어낸 길 위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버스 안은 고요했다. “드드드드” 하는 버스의 거친 엔진음 사이로 이따금씩 정류장 안내 멘트가 장단을 맞출 뿐이었다. 모두가 홀로 탔기 때문이다. 간혹 대화에 굶주린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새벽 4시 무렵인데도 정류장마다 꼬박꼬박 한두 명씩 버스에 올랐다. 한쪽으로 메는 작은 손가방을 어깨에 사선으로 메고 목이 짧은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은 남성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심야버스 막차는 밤과 새벽의 경계를 달린다. 심야버스 막차가 퇴근 버스이자 출근 버스가 되는 이유다. 가방을 품에 안고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했던 여성은 “일하러 간다”고 했다. 새벽 4시도 안 됐는데 출근이라니. “먹고사는 데 밤낮이 어딨어요? 사람들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끝내놔야 하니까. 가서 준비도 해야 하고…”
여성은 “청소 일에 이골이 났고 오후 4시면 일을 마치니 피곤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름이나 나이는 왜 물어보느냐, 어디서 조사 나온 것이냐”는 여성의 ‘보글보글 파마’ 사이로 제법 많은 흰머리가 보였다. 버스가 광화문에 닿자 여성은 빌딩의 검은 그림자 속으로 서둘러 사라졌다.
*《빅이슈》82호 (4월 15일자 발행) 판매처 안내 http://www.bigissue.kr/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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