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홈리스월드컵 출전 한국선수들..경기를 즐긴 진정한 영웅들
윤정국(빅이슈코리아 사무총장)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시작해 올해(2014년)로 12회째를 맞는 ‘홈리스 월드컵’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렸다. 서울에서 30시간의 항공여정 끝에 도착하는 먼 곳이지만 우리 국가대표선수들의 참가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칠레의 대형국기가 펄럭이는 산티아고 시내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 10월 19일 개막한 이번 월드컵은 한국을 포함해 42개국에서 54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26일까지 8일간 진행됐다. ‘홈리스 월드컵’은 빈곤 마약 알코올 등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전 세계의 홈리스들이 축구를 통해 삶의 동기를 부여받고 재활의 꿈을 실현하려는 무대다. 한국은 2010년 대회부터 참가해 올해로 다섯 번째 출전했다. ‘홈리스 월드컵’의 국내 공식주관사인 빅이슈 코리아는 10월3일 국회운동장에서 전국의 노숙인 복지시설 24개에서 31개 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2014 홈리스건강축구대회’를 통해 대표선수 8명을 선발했다. 19일 오후 산티아고 시내 아르마스광장에서 대통령궁 앞 모네다광장 경기장까지 30여분 간 각국 선수들이 자국기를 들고 가두퍼레이드를 벌여 한층 열기를 고조시킨 다음 열린 개막식에서 각국 기수들의 입장에 이어 홈리스월드컵본부의 멜 영 사무총장의 개회선언으로 대회가 시작됐다. 개막경기는 주최측인 칠레와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가 벌였다. 우리로 치면 한일전과 같은 경기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칠레 국민들이 나와 자국팀을 응원했으며 칠레팀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아르헨티나가 맥을 추지 못한 일방적 게임이었다. 그 후부터는 경기장에 마련된 3개의 피치(미니풋살장 경기시설)에서 남자 42개팀과 여자 12개팀이 15분 경기를 벌이는 방식으로 쉴 새 없이 경기가 진행됐다. 가로 22m, 세로 15m 크기의 피치에서 각 팀 4명의 선수들이 전 · 후반 7분(중간휴식 1분)씩 경기를 치렀다.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의외의 복병은 산티아고의 날씨였다. 서울과 비교해 밤낮과 계절이 정반대인 산티아고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이상기온으로 한낮에 31~32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로 많은 참가자들이 애를 먹었다. 선수들은 땡볕에 뛰느라 금새 땀에 젖었고, 응원 온 사람들은 스탠드 위 천막천정이 햇볕에 달구어지는 바람에 불덩이를 이고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경기는 Qualification Stage(1단계)-Group Stage(2단계)-Trophy Stage(3단계)로 진행됐다. 마지막 이틀에 열린 3단계에서는 그동안의 경기실적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고 이 중 8강에 든 팀들끼리 토너먼트로 실력을 겨루며 우승팀에게 홈리스월드컵이 주어진다. 그렇다고 8강에 들지 못한 팀들이 바로 짐을 싸지는 않는다. 약자를 배려하는 ‘홈리스월드컵’의 취지에 따라 늘 그래왔듯이 올해에도 7개 컵이 더 준비됐다. 9~16위 팀들은 칠레군인컵, 17~24위 팀들은 산티아고시장컵 등을 차지하기 위해 뛰었다. 모든 팀들이 끝까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번 칠레대회의 특징은 현지인들의 관심이 많았다는 점. 칠레 방송국에서는 칠레경기가 있을 때마다 일정을 알려주어 많은 관중이 몰렸고 응원열기도 대단했다. 칠레 관중은 같은 남미권 국가인 브라질과 멕시코에 적대적이어서 항상 그 상대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남미 특유의 느긋함으로 행사가 예정대로 제 시각에 진행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으며, 인도네시아 홍콩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이 향상된 것도 이번 대회의 특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40~50대 위주의 한국팀은 체력과 기량이 월등한 10~20대의 젊은 선수들(소년원 출신과 마약 치료경험의 선수 등)로 구성된 외국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선수 8명은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번 대회의 경기들을 통해 아픔을 날리고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받는 귀중한 경험들을 했다.
출전 선수 중 김종영 씨는 “우선 지친 저를 치유하고 싶고, 앞으로 공공근로나 사회 복지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 때까지 촉망받는 축구 선수였던 그는 척추손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부모님과 헤어지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잃었다. 그는 이후 스스로를 지탱할 힘조차 없던 낙오자가 됐다. 하지만 홈리스월드컵을 목표로 다시 자활의지를 다져 당당하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박영현 씨(혜화역 2번 출구 빅이슈판매원)는 희망과 기대가 없던 삶에서 얻은 우울증을 축구로 극복하고 있다. 김귀현 씨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축구 동아리를 조직해 이끌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관리하던 반장으로 근무하던 중 회사 사정으로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된 후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전전했고, 이대로 삶이 끝나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축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칠레에 왔다. 이계환 씨는 연세대 축구부 신재흠 감독과 동기로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방황의 시기를 겪은 그는 본인 스스로 들무새공동체(서울 상계동)에 입소해 조기축구회에 참가하며 축구로 인생을 새로 바꿔가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팀 구성과 훈련이 1주일이 채 되지 않은데다 다른 외국팀들에 비해 고령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며 투혼을 빛냈다. 이들은 승패에 초연한 듯했다. 승패를 넘어 경기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즐기는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단적인 사례가 덴마크 전 후 펼쳐진 정종수 선수의 ‘강남스타일’ 쇼타임 스테이지. 평소 두건을 즐겨 쓰는 정종수 선수는 선글라스까지 끼면 외모도 싸이와 비슷한 느낌. 경기 후 벌어진 쇼타임 퍼포먼스는 현지 방송중계진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정 선수의 쇼맨십을 잘 알고 있던 현지 운영진은 혹시 한국팀이 이긴다면 강남스타일 춤을 출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정 선수는 “져도 상관없다”며 다함께 즐기겠다고 응했던 것이다. 관중석과 선수들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회 운영진은 ‘승패에 상관없이 서로를 응원하고 즐길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홈리스월드컵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에 앞서 노르웨이 전 경기에서는 심판으로부터 ‘페어플레이 팀 카드’를 받았다. 이 카드는 대회 기간 중 단 몇 팀에게만 주어진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상대팀을 배려하고 진정으로 대회를 즐길 줄 아는 팀에게 주어지는 카드. 항상 파이팅 넘치고, 상대팀 선수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분위기 메이커 정 선수가 페어플레이 카드를 받을 수 있게 한 주역이었다.
전방 공격수 최신영 선수는 여러 차례 통쾌하게 골을 넣은 골잡이 실력을 과시했으며, 골키퍼 차윤수 선수는 다리부상까지 입으며 투혼을 발휘했다. 또 김창훈 선수(외대 앞 빅이슈 판매원)는 골잡이 실력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영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살려 우리 선수들과 심판진 사이의 통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우리 선수들은 하루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경기장에 남아 훈련을 더하거나 숙소에서 늦은 밤까지 그날의 경기를 반추하고 내일의 경기를 위해 의논하기도 했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승패에 상관없이 이를 즐겼다. 이런 과정에서 선수들 모두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들이야말로 2014 칠레홈리스월드컵의 진정한 영웅들이 아닐까?
한편 이번 우리 선수들의 칠레홈리스월드컵 참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GKL사회공헌재단, 대한축구협회, 신한은행, SKT, LH 등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또한 칠레대사관과 현지 교민들의 응원과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이번 칠레 여행길에 동행한 한국노숙인시설협회 임은경 사무처장,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원용철 사무총장, 들무새공동체(홈리스건강축구대회의 우승팀)의 담임 김홍기 목사의 존재는 선수들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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