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도서관
사람을 빌려드립니다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서 독서하듯 이야기를 나누는 리빙라이브러리. 2000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이 도서관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부쉈다.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다.
글 박수진·이윤정 사진 김아름(재능기부자)·변호은(재능기부자)·염지환·휴먼라이브러리기구
출처 빅이슈코리아 14호
사람들의 변화에 자부심을 느낀다
리빙라이브러리는 덴마크에서 비폭력주의 운동을 하던 네 청년에 의해 우연히 시작됐다. 휴먼라이브러리 기구를 설립해 지금까지 리빙라이브러리를 이끌고 있는 로니 아버겔과의 서면 인터뷰.
리빙라이브러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1993년에 친구들과 만든 NGO에서 비폭력을 주제로 교육 목적의 사회운동을 했다. 이때 폭력을 줄이기 위해 행사를 기획한 것이 리빙라이브러리의 시작이었다. 처음 열었던 로스킬데 페스티벌에서 혹시 대출자가 없을까 염려해 사람책끼리 대출하도록 50명을 불렀다. 그러나 여러 다른 문화와 민족적 배경을 가진 페스티벌 참여자들과 스태프들이 4일 동안 1,500건 넘게 대출했다. 이를 보고 리빙라이브러리가 세계 어디서든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가? 가장 인상적인 참가자는 누구였나?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직접 2~3명을 빌리기도 한다. 사람책을 빌릴 때는 그 지역의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제목을 고른다. 대출자 중에 2003년에 헝가리에서 만난 8살 소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고 폭력에 관한 사람책을 빌리러 온 소년이었다.
60여 개 나라에서 행사가 열렸다. 직접 본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문화권이나 사회에 따라 편견의 대상도 다르기 때문에 인기 있는 책의 종류도 다르다. 예로 덴마크에서 게이는 다른 주제에 비해 더 관심을 끄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헝가리에선 게이 사람책이 굉장히 인기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보균자와 이슬람교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서는 홈리스와 10대의 미혼모를 많이 찾았다. 공통적으로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됐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도 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다. 일상에서 전혀 마주 칠 일이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는다.
이제 막 리빙라이브러리가 알려지기 시작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리빙라이브러리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정직하며, 직접적인 변화를 준다. 사람책의 주제가 모든 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인 경우가 많아 어느 나라에나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빙라이브러리를 만든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호주·노르웨이에서는 정부에서 이런 목적에 공감해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리빙라이브러리를 경험하며 타인과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길 바란다.
행사를 열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다양한 주제를 가진 사람책들을 초대할 것. 사람책은 자신이 안고 살아 온 삶의 주제와 낙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가진 편견에 대해 잘 아는 지역의 기획자들이 행사를 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세계 각 지역의 기획자들에게 계속 리빙라이브러리를 홍보하고 우리의 가치를 전달하려고 한다. ‘가상 리빙라이브러리’도 구상중이다. 이동이 불편하거나 사람책과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의 사람책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취지가 오래도록 지속돼서 사람들과 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윤정 기자의 사람책 독후감
자신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라
종이와 활자로 만나는 책이 아니라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책은 어떨까?
리빙라이브러리는 도서관과 어떻게 다를까?
참가 계기 취재 기획안을 찾아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리빙라이브러리에 대한 소개글을 보았다. 사람책이라는 단어가 생소했고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서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는 발상이 재밌었다. 그러다가 부천문화재단에서 ‘리빙라이브러리 인 부천’을 연다기에 대출자로 참여해보았다.
‘리빙라이브러리 인 부천’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14명의 사람책 목록을 훑어보았다. 여러 사람 중에서 눈길을 끈 건 72살인 황안나 씨였다. 4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살다가 정년을 앞두고 사표를 던진 뒤 도보여행을 한다고 했다. 65살에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종단했고 67살에 해안을따라 4,000㎞를 걸었다. 이 특이하고 멋진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내 삶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도전해보고 싶은 사건이 있었지만 매번 한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황안나 씨를 사람책으로 만나 읽어보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운영 방식 3차까지 나눠진 대출 시간표 중 1차에 대출 신청을 했다. 간단한 행사 소개와 유의사항등을 전하는 설명으로 시작해 참가하는 사람책을 소개하고 대출이 시작되었다. 대출 시간은 40분, 휴식 시간은 20분이었다. 황안나 씨의 테이블에는 나를 비롯해 모두 4명의 대출자가 앉아 있었다. 필요한 건 없었다. 그저 황안나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마음을 움직이면 됐다.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뿐.
사람책 경험 대화는 가벼운 인사로 시작됐다. 황안나 씨는 꼭 걸어보면 좋은 길을 소개해주기도 했고 살아온 인생도 풀어놨다. 진짜 나이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한 숫자라고 했다. 자신의 진짜 나이는 마흔아홉 살이라며 “내가 지금 마흔아홉 살이라고 뽐내면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데 여러분은 병아리도 아니고 달걀”이라 했다. 그 자리에 앉은 대출자들은 저마다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가족에게 자꾸 얽매인다는 한 주부의 고민에 “나만을 위한 공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놔야 한다”며 “자신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상황에 따라 배낭 7개를 항상 준비해 놓는다는 황안나 씨에게 궁금증을 던졌다. “도전이, 실패가 두렵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잘못 들어간 길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는 이야길 들려주었다. 여행을 하다 길을 잘못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매번 더 멋진 폭포를,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고.
정해진 40분의 시간이 금방 흘렀다. 끝나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뜰줄 몰랐다. 즐거운 목소리로 공간이 가득 찼다. 리빙라이브러리에서 사람책과 대화로 소통하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대출한 사람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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