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캡의 스마일맨이 광화문에 떴다. “빅이슈입니다. 안녕하세요!” 낮고 구성진 목소리에서 다부짐이 느껴진다. 일하는 기쁨을 쌓아가는 김희종 빅판의 이야기.
글 이아림(빅판 코디네이터) 사진 염지환 동영상 조재형(재능기부)
산울림을 좋아하는 마라도나
김희종 빅판에게 전화를 걸면 컬러링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이문세의 '행복한 사람')." 노래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그는 톰 존스와 산울림을 좋아한다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런데 여가시간에는 주로 음악을 듣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의외다.
"빅판을 시작하고는 취미생활을 하지 못했어요. 공도 차고 발레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걸 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생활의 기반을 잡는게 먼저니까요."
'젊었을 적엔 마라도나 소리도 들었던' 김희종 빅판은 교통사고로 갈비뼈, 이, 팔 등을 다쳐 장애 5급 판정을 받은 후 운동을 접어야 했다. 당분간은 판매에 매진해야겠다는 의지가 앞섰다. 그렇게 광화문역 4번 출구(종로구청 입구 사거리)로 판매지를 이동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그는 하루 아침에 단골이 생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쉽지 않은 시간들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버티게 한 자신의 '의지'를 믿는다.
편견 이긴 것은 오늘 하루 근로에 대한 기대
김희종 빅판은 젊은 시절 관광버스 여러 대를 운영했다. 벌이가 꽤 좋았으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사채를 쓰게 됐다. "꾸준히 갚아나갔는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2년쯤 지나니 이자에 이자가 더해져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더라고요. 그러다 뇌경색이 왔는데 2~3주 입원해 있는 사이 사채업자들이 일가친척을 전부 찾아다니며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 모양이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혼자 떠나면 집안이 모두 편하겠다 싶어서…….지난해 봄에 집을 나와 노숙을 시작했죠."
자고 일어나면 지하철을 타고 '오늘 밥은 어디로 먹을 갈까.' 고민하는게 전부인 생활이 1년 동안 계속됐다.《빅이슈》를 만난 건 올해 2월. "아침에 눈을 뜨면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는 것, '오늘은 얼마나 팔까?'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이 좋아요.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게 되니까."
고마운 독자들도 많이 만났다. 이전 판매지였던 '건대입구역'에서 알고 지낸 한 고등학생 독자는 최근 광화문까지 찾아왔다. "어느 날, 아저씨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봐서 가르쳐줬더니 그걸 지금까지 기억한 거예요. 건대에서 광화문까지 케이크를 사들고 왔더라고요. 뭉클했죠. 나는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
물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아직 많다는 것을 거리에서 실감해야 했다. 처음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편견을 이기는 '기대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 강해져요. 이런 불모지에서《빅이슈》를 산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요? 무조건 감사하다는 말밖에 없죠, 뭐. (웃음)"
판매도우미 백청안 군의 메시지
해가 쨍쨍하던 광복절, 우리는 시청 근처에서 김희종 빅판을 만났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겨준 김희종 빅판은 '사람들 통행에 불편을 주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시며 우리에게 빅이슈 홍보 요령들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시작한 두 시간 동안의 빅돔 활동이 내게 이토록 큰 의미가 될 줄은 몰랐다. 김희종 빅판님은 판
매를 하다 짬이 생기면 그 매력적인 목소리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빅판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서
나는 ‘희망’에 대해 배우고 다시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소외계층에게 꿈꿀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하는 걸
까.” 빛이 보이지 않던 시기를 스스로 벗어나 빅이슈를 만나고 다시 희망을 꿈꾸시는 김희종 빅판님. 그 땀 흘리는 모습과 잔잔한 미소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 미소가 바로 꽥꽥 소리만 지르는 우리보다 훨씬 많이 파시는 빅판님만의 비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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