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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제자 윤아에게

CULTURE 2011. 11. 2. 16:00


글 김선욱(재능기부) 그림 박아림(재능기부) 출처 빅이슈코리아23호

네가 나를 찾아와 주례를 부탁했을 때 깜짝 놀랐단다. 우선은 네가 내게 주례를 부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처음 부탁받은 주례라 이제 쉰을 갓 넘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런 일이었기 때문이지.

네가 돌아간 뒤 오래전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던 네 모습과 이후 너와의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교생실습을 다녀온 뒤 학교에 바이크를 타고 출퇴근하여 학교 안에서 온통 화제가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학교 신문에도 네 기사가 났었다는 너의 무용담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신나게 듣기는 했지만 좀 염려가 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어. 졸업을 채 하기도 전에 오토바이 모델로 나서 찍은 화보를 들고 와 내게 보여주었을 때, 멋진 네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도 내심 당황스러웠었지. 철학을 전공한 모델이라니! 그러나 그 후에 너는 교육 디자이너로서 강의도 하고 시립도서관에서 강연 플랜도 하더니, 어느 교육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네가 봐야 했던 마지막 기말고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나중에 내게 전화를 해서 시험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던 순간이었어. 병원에서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급작스럽게 다가온 병과 시험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알려왔지만, 나로서는 그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고, 또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서 무조건 재시험이나 재가시험을 허락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 순간 내게 떠오른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내가 교수가 되기 전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한 적이 있었어.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은 해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특례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는데, 학원에서 소위 배치고사라는 것을 보고 그 성적에 따라 어느 대학에 원서를 쓸지를 결정하는 순간이 있었지. 그 시험 후에 한 여학생이 찾아와 자기의 성적 산정이 잘못되어 있 수정해달라고 하였다. 내가 ‘확인할 수 있게 돌려주었던 답안지를 보여 달라’고 하니 ‘집에 두고 가져오진 않았기 때문에 보여줄 순 없고 그날 수정하지 않으면 잘못된 점수로 성적이 나오니 당장 고쳐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지. 난 그 학생의 말을 믿을 근거는 없었지만 잠시 망설인 뒤 믿어주기로 하고 “난 네 말을 믿는다. 점수를 고쳐줄게.”라고 말하고는 수정해주었다. 그 뒤로 그 학생은 왠지 달라보였어. 얼굴이 환해졌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남은 학원생활을 잘 마무리하였다. 선생님으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은 뒤 오는 자신감이랄까.



믿을 근거가 확실하다면 믿음은 불필요한 것이고, 믿을 근거가 확실치 않은 순간에 믿음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난 네 말을 그냥 그대로 믿기로 하고 네 말을 근거로 그 뒤의 일들을 처리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찰스 테일러의 책을 읽으며, 신뢰라는 것의 특징을 배우게 되었어. 아마 네 경우도 그렇고 학원에서 만난 여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믿을 근거들을 제시했더라면 내겐 믿음이 필요 없었을 것이야. 그런 근거들이 그 순간엔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이라는 게 작용할 수 있었다. 믿을 근거가 확실하다면 믿음은 불필요한 것이고, 믿을 근거가 확실치 않은 순간에 믿음은 가치가 있는 것. 그런 순간에 내게는 믿음이라는 결단이 필요했고, 그런 믿음 덕분에 아마도 지금 네 주례를 서게 되는 데까지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은 오직 믿을 때에만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 새로이 부부로 탄생할 너와 네 남친에게 선생으로서 주고 싶은 가장 큰 말은 서로 믿으라, 신뢰하라는 말이다. 살다보면 부부에게 신뢰란 밥처럼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러니 둘 사이에는 조금이라도 의심의 그림자도 남지 않도록 전적인 신뢰를 쌓아 가길 바란다.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의심이라는 작은 개미 구멍일 수 있으니 말이야.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둘이 하나 되는 행복한 삶을 이루길 바란다. 
 


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행복의 철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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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빅이슈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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