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쿠스 여행하는 콘서트 ⑤
글 피터(재능기부) 그림 박아림(재능기부) 출처 빅이슈코리아 30호
왜 그렇게 자주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알아요? 그건 하다만 일(unfinished things)이 많기 때문이에요. 결국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끝내지 못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거든요. 그냥 질러버려요. 그냥 말해버려요. 그렇게 나눠요. 솔직하게.
베를린 가는 길에 친구가 전한 말이었다. 그 말로 노래를 만들었다. 위로가 필요한 날들이 있으면 이 말을 되새긴다. 끝내지 못한 일들. 끝내지 못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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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여유 있게 왔다. 너무 멀 거라고 생각 했는데. 그래서 할 일이 없었다. ‘소니센터’에서는 항상 영어로 하는 영화 틀어주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곳에 들렀다. 묘하게도 그곳에는 호주에서 온 체인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포스터를 마시기도 했다. 어쨌든 복잡한 그곳 한가운데 공터에 서 있으면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신촌 한복판의 복잡함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아이맥스 3D 극장에서, 선글라스 같은 안경을 쓰고 SF 영화에 빠져들었다. 탄성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피하기도 한다. 극장에 혼자 있어 아쉬운 건 그런 개인적인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건데, 그때는 묵주 기도를 중얼거리듯이 혼잣말을 하면 된다. 도저히 혼자는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한 자루의 팝콘과 한 동이의 콜라를 들고 있으면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든다. 그것도 그냥 잠시일 뿐, 이제 복잡한(complex) 그곳의 구조가 익숙해져서 극장을 지키는 꼬마 유령처럼 느긋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큰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거대한 문이 나오는데 그 밑에 서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강풍처럼 몰려온다. 걷고 또 걷고. 지팡이는 없지만 좀머 씨처럼. ‘폭탄 맞은 교회’를 지나칠 때마다 그 옆에 있는 예배당에서 언젠가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중얼거린다.
처음으로 로자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우릴 초대했던 바로 그 사람. 그러니까, 둘시네아 공주 같은 거다, 돈키호테가 모시는. 그녀가 사는 거리 이름은 ‘셀시우스’. ‘섭씨’라는 뜻이다. 바로 옆길이 화씨(파렌하이트)였다. 온도를 느끼며 사는 마을일지도 모른다. 꽃이나 맥주를 사 오라고 해서, 맥주를 택했다. 맥주 여섯 캔을 배낭에
넣고 지하철로 향했다. 냉기가 없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많은 베를린. 상쾌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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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따뜻하고 좋았다. 유럽의 방 같지 않고 서울의 원룸 같은 분위기. 작은 발코니에 서면 하늘이 넓게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좋았다. 묘한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저녁상이 차려졌다. 김치볶음밥과 딱딱한 빵, 인스턴트 미역국이다. 나름 나를 배려한 식단 같았다. 김치볶음밥 안에는 소시지와 치즈 그리고 김 가루가 들어 있었다. '여기서 지내다 보니 음식이 점점 짜져요.' 로자와 나는 우리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루할 것 같았던 긴 유학 생활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처럼 이어졌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공연은 솔직히 너무 이기적이었다. 짧았고 웅얼거렸다. 독일어도 시도해보았다. ‘그래도 좋네. 여긴 베를린이니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 날 지친 마음을 이끌고 역시 구석에 존재한다는 동네 클럽에 가기로 했다. 혼자. 역시 밴드는 같이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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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계획 있어요? 두 잔쯤 더 하고 집에 갈 예정! 당신은? 한 잔쯤 대접할 예정, 당신한테. 음악은 조금 오래된 스타일이라 괜찮았고 몸을 흔드니 맥주도 더 잘 들어가고. 그때 베를린 천사가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본 거다. 눈이 마주치고 음악은 뮤트 화면은 슬로우. 여긴 베를린이니까.
피터
정치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오래된 책들을 읽기 좋아해서 고전에 대한 글을 쓴다. 홍대와 신촌 사이에 기타를 배우며 고전을 읽는 서당을 여는 것이 꿈이고, 지금은 <싱클레어>의 편집장. 밴드 ‘기타쿠스’의 기타리스트. 계절콘서트 <신촌콘서트>의 프로듀서로 살고 있다. http://www.facebook.com/guita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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