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정원(재능기부, 배우)
사진 기아대책
태국의 수해복구 현장을 가다
드라마 <브레인>이 인기리에 마쳤다. ‘강지커플’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나니, 그 사랑에 빚진 마음이 생겼다. 빚진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아대책이라는 국제구호 NGO 단체로부터 지난해 홍수로 수
개월 동안 물에 잠겨 있었던 태국을 소개받았다. 이렇게 수해가 복구되지 않은 현장에서
위험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구호 전문
가도 아니었고, 봉사 경험도 많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일들이 어떤 것일지
기대 반, 걱정 반 그렇게 날짜는 다가왔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아이들
6박 7일간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었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다는
소년의 이야기.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상실감으로 상처받았을 아이들의 마음이 참으로
걱정됐다. 우선은 작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만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 선물이 좀 더 의미 있도록 학용품에 일일이 아이들의 이름을 붙이고, 옷장에서 아끼던
원피스를 꺼내 챙겼다. 정성이 더해진 선물이 아이들의 마음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
워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엄마를 잃은 엠과언 자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린 자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충격과 상처로 말조차 잃은 엠. 그나마 자매들에게
따뜻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작년 큰 홍수 때문에 아이
들은 그것조차 누리지못하고 있었다. 두 자매를 위해 벽돌을 쌓아 방을 만들어주었다.
근처시장에 가서 함께 장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한국식 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더니 아이들은 내게 태국의 김치를 맛보여 주겠다며 성화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덧 난 아이들의 큰언니가 되어 있었다.
함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픈 언니, 슈퍼에서 5바트짜리 음료수를 함께 나눠 먹고 싶은
언니 말이다. 이곳의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것을 나누는 일이 잘 없다고 하는데, 아이들
은 선뜻 내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었다.
가족이 된 것 같은 맘에 설레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섯 손가락을 잃은 깽이라는 소년. 다친 손을 항상 등 뒤로 감추고 낯선 이방인을 향해
호기심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CDP센터(기아대책어린이결연센터)가 주최한 연극에서 주인공을 할 만큼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갑작스레 잃게 된 손이 아이의 자신감마저 잃게 한 것
이다. 다친 손은 낫게 할 수 없지만, 다친 마음은 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아이가 부끄러워하는 그 손을 잡고 끊임없이 어루만져주고, 입을 맞춰주고, 안아주
었다. 아이를 안으며 “너는소중하다. 너는 특별하다” 사랑의 주문을 외웠다. 아이의 친
구가 되어 벽돌 공장에서 함께 일을 했고, 축구를 통해 다른 친구들과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는 동안 한동안 볼 수 없었다는 깽 특유의 ‘살인미
소’를 볼 수 있었고, 헤어질 때 그 아이의 다친 손은 나를 향해 당당히 인사하고 있었다.
사랑을 주는 기쁨
짧은 시간 동안 더 깊이 더 많이 마음을 주었기 때문일까, 한국에 오는 두이들과 헤어지
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되로 주었던 사랑을 말로 받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
다. 주는 기쁨은 참으로 묘하다. 줄수록 행복해져서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사랑을 주려고 왔는데, 더 받고 갑니
다’라는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다
녀온 태국의 우본라차타니의 도시 빈민 아이들은 벽돌을 만들거나 약을 파는 일로 생계
를 이어가고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였고, 여자들은 아이들과 함
께 공장에서 일을 했다. 당장의 생계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생각도 못 하지만, 열심
히 일해도 그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과 작은 도움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사랑과 관심을
주는 일은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B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호 차우진의 Hot Track <벚꽃 엔딩>은 끝나지 않지만 (0) | 2012.05.10 |
---|---|
34호 [그 남자의 주방] 때로는 무거움도 가볍게 (0) | 2012.04.29 |
33호 사랑, 되로 주고 말로 받다 (0) | 2012.04.17 |
"투표 꼭 해" (0) | 2012.04.10 |
봄볕 닮은 건축, 그를 담은 영화 (0) | 2012.03.28 |
위로는 버리고 눈과 귀를 여세요. (0) | 2012.03.26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