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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마음으로 희망을 돋웁니다
방용석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은 2012 멕시코시티 홈리스월드컵 한국대표팀에 참가한다. 어릴 적 축구선수가 꿈이었다던 그는 꿈이 이루어져 신기하다며 마냥 좋아했다.
글 안병훈, 서성진
사진 안병훈
출처 빅이슈 46호
작은 체구, 단단한 마음
2012 멕시코시티 홈리스월드컵을 대비해 치러진 제1회 한일 홈리스 축구팀 교류전에서 방용석 빅판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도 빠른 발놀림과 날쌘 움직임으로 상대 선수를 제치고 풋살 경기장을 누볐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로 성장이 멈춘 그의 키는 그 후로도 30년간 단 1㎝도 자라지 않았다. 그는 작은 체구 때문에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플라스틱 공장에 들어가 기계를 만졌어요. 햇수로 15년 동안 일했지만,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해고당했죠. 재취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도 일할 때가 있었는데, 작은 체구 때문에 일을 주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저보다 체격이 큰 사람은 일당으로 10만 원을 받는데, 저는 5만 원 밖에 받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요. 그때 참 힘들었죠”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때 힘들었던 것은 몸보다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면 체구가 작은 것은 절망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것을.
“제조업에서나 건설 현장에서나 체격이 큰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서 일하지 않는 홈리스들도 많죠. 저는 《빅이슈》에 들어와서 축구도 하고 대외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정신이, 마음이 변하는 걸 느껴요”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약간 뜸을 들였다. 서울에서 지구 반대편 멕시코시티까지 날아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조금 복잡했던 모양이다. 무언가 아픈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지금은 축제 기간이니까 과거 생각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걸 마음에 두고 축구를 하면 별로 안 좋을 것 같거든요. 지나간 일들을 다잊어버리면 100% 행복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지금은 생각 안 하려고요”
이번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중책을 맡은 방용석 빅판은 무엇보다 팀플레이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한다.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려고 해요. 축구는 단체 경기이기 때문에 같은 팀 선수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해야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아요. 골은 못 넣더라도 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팀을 생각하는 그의 각오에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필리핀 여행 이후 처음 외국으로 나선다는 그는 특별히 긴장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나는 다른 나라의 홈리스 선수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된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의 선수를 만나면 어떻게 말을 붙일 건지 슬며시 물어보았다. 준비한 듯이 그가 말한다.
“¡Hola! ¿Co´mo esta´s? Mellamo 용석. Gracias.(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용석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출정을 위해 조현성 코치가 준비해준 문장들을 잘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자신 있게 스페인어를 말하는 그를 보니 어쩐지 이번 홈리스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국대표팀은 나미비아와의 첫 경기에서 17:0으로 대패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방용석 빅판은 홈리스들에게 더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가나 사회에서 홈리스들을 격려해준다면 홈리스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될 거예요. 희망을 주면 바뀐다는 거죠. 너무 서두르지 말고 오랫동안 천천히 희망을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이렇게 축구를하면서 희망을 찾고 있듯, 홈리스들 스스로도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빅이슈》를 하면서 제가 깨달은 겁니다”
방용석 빅판
판매지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
트위터 @bigpan_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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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멕시코시티 홈리스월드컵 이야기 ①
스파이가 이중스파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10월에 열릴 2012 멕시코시티 홈리스월드컵에 앞서 8월 29일 서울에서 한일 홈리스 축구팀 교류전이 열렸다. 호시노 씨가 ‘도모다치’라 별명을 지어준 이민수 빅이슈 판매원(서울대입구역)과 경기를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글 호시노 도모유키(재능기부)
번역 서경희(재능기부)
사진 김상준(재능기부)
이 보고서는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일이 본업인 나, 호시노 도모유키가 서울에서 벌인 스파이 활동 내용이다.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까닭은 이 보고서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나의 임무는 빅이슈코리아가 주최하는, 8월 말 서울에서 열릴 한일 홈리스(Homeless, 주거취약계층) 축구팀 교류전을 대비하기 위해(글쓴이는 2012년 6월과 7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연습경기에 참가하였다.-편집자주) 한국 홈리스 축구의 실정을 몰래 조사하는 것이었다. 영등포공원 내 풋살경기장에서 진행된 연습에 내가 처음 참가한 날은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만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6월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인조 잔디 속 검은 고무 충전재가 강렬한 햇볕에 달궈져 뜨거웠다. 극심한 열기 때문에 일본에서 가져온 신발의 고무 부분이 녹아 밑창이 떨어져버렸다.(이후 명동에서 새 신을 샀다) 이미 모여 있던 10명 안팎의 아저씨들과 몇 명의 청년들이 가벼운 워밍업을 겸해 골대를 향해 슈팅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선 선수들이 이렇게나 많이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쿄에서는 5명 정도 모이면 괜찮은 편이었다. 그것도 보통 자원봉사자나 스태프 쪽이 더 많았다. 연습 전 미팅이 시작됐다.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함께 와준 사카모토 치즈코 씨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사회학자인 사카모토 씨와는 이때 처음 만났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트위터에 요구르트 만드는 방법을 올렸을 때 질문을 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사카모토 씨였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그녀의 트윗을 봤더니 ‘빅이슈’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빅이슈》를 알고 있다면 홈리스 축구에도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심심풀이로 가보실래요?’, ‘가는 김에 통역을 부탁 드려도 될까요?’라며 억지로 초대한 것이다. 그 후 사카모토 씨는 축구 연습에 참가하게 됐다. 사람과 융화되는 그녀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감격의 순간은 연습이 시작된 이후 찾아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선수 아저씨들이 차례로 나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사카모토 씨는 경기장 바깥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통역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아는 한국어 단어를 동원해 무언가를 말했다. 물론 대화는 제대로 오가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주고받는 것이 기뻤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거야, 이거야말로 홈리스 축구야!’라고 외쳤다.
나는 도쿄에서 일본의 《빅이슈》 기금이 주관하는 홈리스 축구 ‘노부시재팬’(일본의 홈리스 축구 남자대표팀) 프로젝트에 2년 전부터 참여하고 있다. 친구의 권유로 가봤는데, 소통이 잘 되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입장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모르는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홈리스라든가, 후원자라든가 하는 경계는 없었다. 단지 모두가 축구를 하고 있는 동료일 뿐이었다.매월 한두 차례 얼굴을 대하면서 점차 친해졌다. 서로의 성격도 조금씩 알게 됐다. 눈에 보이는 것은 축구 동료인 한 친구의 얼굴이지, ‘홈리스’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상상되는, 자못 흔해빠진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 홈리스든, 직장인이든, 실업자든, 은둔형 외톨이든, 노인이든,청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떤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서로 선을 긋지 않은 채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축구를 한다. ‘이런 공간이 있다면 삭막한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 텐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길 위 안식처로서의 축구를 어떻게든 넓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길거리 축구 정신이 한국의 아저씨 선수들에게 넘치고 있었다. 한 팀이 돼 패스를 주고받다가 내가 잘하면 선수들은 일본어로 ‘스바라시!(대단하다)’라고 말해주고, 선수들이 잘하면 내가 한국어로 ‘좋아요!’라고 말해주었다.
매주 참가하면서 선수들 각각의 캐릭터도 알게 됐다. 모두 강렬한 개성을 지닌, 별난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몰래 서부극에 나올 법한 별명을 붙이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왼발로 정확하고도 강한 슛을 날리는 것이 특기인 젊은 선수 ‘레프티 스나이퍼(Lefty Sniper)’, 자식이 있는 판매원 ‘아빠’, 계속 개그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지만 절대로 뛰지는 않는 ‘개그맨’(나와 모자를 교환했다), 빨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슈팅 연습 시 골키퍼를 맡고 있는, 일본어에 밝은 ‘도모다치’(‘친구’라는 뜻), 작년에 열린 파리 홈리스월드컵에서 중심 멤버로 활약한, 밝고 힘찬 ‘캡틴’, 항상 윗옷을 벗어 그 탄탄한 육체를 자랑하는 파리 대회 멤버 ‘몸이 좋아요’ (실제로 절반의 선수들이 윗옷을 벗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얀 탱크톱’(최근 더 멋진 자전거로 바뀌었다), 야구를 좋아해 ‘이치로’를 계속해서 외치는, 눈이 큰 ‘귀공자’, 볼록한 배로 적을 압박하는 파리 대회 멤버 ‘고마노’(일본 축구선수 ‘고마노 유이치’와 닮았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내킬 때만 공을 좇는 ‘슬리피 아이즈(Sleepy Eyes)’, 파리 대회에 참가했던 젊은 선수로 포르투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우아한 이글(Eagle)’, 난처한 듯한 얼굴로, 실제로 언제나 난처해하는 코미디언 ‘아즈마 하치로’(이런 이름의 일본 코미디언과 쏙 닮았다)까지.
연습은 꽤 본격적으로, 고교 클럽활동처럼 힘들었다. 하반신 단련 기초 훈련은 마흔일곱 살인 내가 따라가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조현성 코치는 홈리스들의 생존에 체력 증진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을 거듭할수록 내 하반신도 단련돼가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일본에서 축구를 하면 아팠던 엉덩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된 것이다. 홈리스뿐만 아니라, 평소 책상 앞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작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도 이 훈련은 필요했던 것이다. 코치님, 고맙습니다! 조현성 코치는 아주 시원시원한 사람으로, 차별 대우 없이 나를 선수의 일원으로 대해주었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호시노, 오른쪽!’, ‘호시노, O.K.!’라는 식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가 금방 내 이름을 외워주었다. 이런 공정한 감각, 누구든 같은 위치의 한 인간이라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홈리스 축구다.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조현성 코치가, 나와 같은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언어가 통했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일본과 크게 다른 부분은 몸싸움 훈련이었다. 상대가 부딪쳐 와도 피하지 않고 멋지게 제친 후 슈팅을 하는 연습으로, 한국 팀 선수들은 이 훈련을 매우 좋아했다. 공을 제쳐놓고 몸을 부딪친다. 한국 축구의 원천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미니 게임에서조차 상대에게 강렬하게 부딪혀, ‘내가 한국에서 축구를 하고 있구나’ 하고 감격에 젖었다. 길을 걸어도 지하철을 타도 다른 사람과 금방 부딪힐만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노부시재팬’ 선수들은 부상 때문에 연습에서든 경기에서든 심한 몸싸움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국 팀의 몸싸움을 겪은 후, ‘부딪힘에 익숙해지는 편이 오히려 부상을 피하는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무슨 일에서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쉽게 신중해진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위험을 바탕으로 돌진한다. 이 사회가 활기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의 홈리스 축구 선수들과는 허물없이 지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홈리스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일본인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것에 서툴다. 반면 한국의 홈리스 축구 사람들은 모두 붙임성 있게 말을 걸면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이런 곳이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하자센터의 젊은이들이 참가한 적이 있었다.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 청년들이라 경기는 무척 활기찼지만, 홈리스 선수들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그날로 인연을 끝내버려 아쉬웠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는 편하게 선수들과 장난도 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오히려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사이를 가르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홈리스 축구를 실현하고 싶지만, 나이, 사회적 입장, 성별 등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홈리스 축구에 참여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이나 처지를 떠나 서로 어우러져 축구를 하고, 이것이 반복되면 경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귀국 전 마지막 연습에서, 그동안 잘 대해주신 것에 대한 답례로 선수들과 스태프들에게 내가 쓴 소설, <오레오레>를 증정했다. 그리고 나는《빅이슈》 티셔츠와 배낭을 선물 받았다. 일본 측 스파이로 시작했는데, 무심코 ‘올해 홈리스월드컵 멕시코 대회에 한국 팀 선수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 마음은 완전히 한국 팀의 일원이 돼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어느 쪽의 스파이인지 헷갈리게 돼 본인의 역할을 망각하고야 말았다. 아마도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홈리스 축구라는 안식처에 계속해서 얼굴을 내밀게 될 것이다.B
호시노 도모유키(Hoshino Tomoyuki)
소설가. 2010년 작품 <오레오레>(2012, 은행나무)는 ‘오에겐자부로상’을 수상하였다. 일본 홈리스 축구팀 ‘노부시재팬’에서 재능기부 스태프로 활동 중.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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