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네고>
(アネゴ, 2005)
사람을 좋아하는 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그에게
‘어려 보이는 누나’가 아닌 ‘진짜로 어린 동생’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글 김희진(재능기부)
TV 속의 멋진 남자들이 자꾸만 ‘오빠’가 아닌 ‘동생’이 돼감을 깨닫게 될 때, 스스로의 나이가 체감하는 것보다 제법 많을지도 모른다는 자아 성찰을 해보게 된다. 이는 비단 화면 너머 그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이성의 범주에 놓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의 남자들도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은 ‘위기감’도 문득 고개를 든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나이 따윈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연상연하 커플이 대세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어려 보이는 누나’가 되기보다는 ‘진짜로 어린 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아네고>란 제목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누님’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이것은 극 중 남자 주인공인 ‘쿠로사와’가 자신보다 열 살 많은 직장 선배 ‘노다 나오코’에게 붙여준 별칭이기도 하며, 결국 이 연상연하 커플의 달달한 로맨스는 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를 이루게 된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꽤나 익숙한 전개로 중간에 한두 번 건너뛰고 보더라도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잘생긴 꽃미남 연하와의 판타지에 가까운 러브스토리가 아닌, 주인공 노다 나오코와 그를 연기하는 시노하라 료코의 현실적인 매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의 드라마로 비교하자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분)’와 같은 캐릭터라고나 할까?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사랑받는, 위트 넘치고 건 강한 여성의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시노하라 료코가 연기하는 서른두 살의 싱글녀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들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또래 여성들의 디테일한 삶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있다.
서른 즈음이 되면 어느 순간 ‘노련해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에 있어 불필요한 힘을 덜 들이면서 능률적인 결과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성취이기도 하면서, 같은 일을 오래 반복해 타성에 젖어간다는 고민이기도 하다. 사랑에 있어서는 내게 맞는 짝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다는 영리함이기도 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빠져드는 순진한 열정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노련해지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스무 살 무렵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이 여전히 불안하고 별것 없는 자신인데, 더는 서투른 것이 귀엽게 웃어 넘겨질 수 없는 진지한 자리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어느 모임에 가나 막내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에 가더라도 더 이상 막내일 확률이 거의 없고, ‘누나’와 ‘언니’라는 호칭 속에 의젓하고 쿨해 보이는 어른 코스프레를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별로 원하지도 않았고 어울리지도 않는 누나와 언니가 되고 보니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고 재미도 없어졌다. 심지어 가끔씩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연설 비슷한 조언까지 늘어놓는 스스로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TV를 보다가 토크쇼에 나온 조인성이 고현정에게 사석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때마다 엄마나 선생님 같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한때 루머로 나돌았던 둘의 스캔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싶어졌다. 조인성을 지킨 건 좋았지만, 엄마나 선생님이 된 고현정은 왠지 좀 씁쓸했다. ‘듬직한’, ‘의젓한’ 이런 말을 듣는 누나보다는, 그저 철없고 수줍은 동생으로만 평생 살고 싶다는 헛된 욕심을 품어보았다.B
<아네고>(アネゴ, 2005)
제작 일본 NTV
출연 시노하라 료코(노다 나오코)
아카니시 진(쿠로사와 아키히코)
국내 방영 KBS joy (2008)
김희진
흔하디흔한, 그래도 쓸 만한 에디터.
현재는 Bicycle Lifestyle Magazine <baqui>에서 항시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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