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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2.10.08 45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의 석훈
  2. 2012.09.20 44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어린 희정
  3. 2012.09.04 43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스물일곱의 기진
  4. 2012.07.26 40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1993년의 열아홉 살 진혁
  5. 2012.06.27 38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어릴 적 영민

45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의 석훈

이벤트/독자 참여 2012. 10. 8. 14:14



글 우석훈(재능기부) 

그림 박정은(재능기부)

출처  빅이슈 45호


이 편지를 네가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미래의 너야. 이제는 아저씨가 됐고. 과거의 한 시점에 편지를 쓰라는데, 가장 생각나는 게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시절이었어. 너도 알잖아, 학교에는 가기 싫고, 학교에서는 되바라졌다고 하루도 매를 안 맞고 오는 날이 없을 정도였지. 지금 생각해보니 되바라진 게 아니라, 그냥 순진무구했던 거야.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알랑방귀’ 뀌는 걸, 우린 그때나 지금이나, 할 줄 모르잖아? 괜찮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


아마 이 편지가 올바른 시점에 배달이 된다면, 넌 지금 서원평이 역천행의 장풍에 맞아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자의소녀가 옆에서 결심하는 페이지를 읽고 있을 거야. 그 순간이, 글쎄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우리의 삶에는 제일 중요한 장면일 것 같아. 그게 책을 읽다가 처음 눈물을 흘린 순간이었으니 말이야. <군협지>, 요즘은 거의 안 보는 무협소설이지만, 대만의 <중앙일보>에 오랫동안 연재됐던 소설이지. 그때 마음 같아서는 와룡생의 다른 책을 찾아서 봤을 것 같지만, 마흔다섯이 되도록 다른 책은 보지 못했네. 아, 무협지를 수백 권 읽은 적이 한 번 더 있었는데, 그건 고 3 대학 입시를 끝내고 놀던 시절이었어.


무협지 대신에 SF를 좀 더 보게 되는데, 프랑크 허버트의 <듄>은 박사과정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세 번째 책을 출간하고 네 번째 책을 준비 하는 기간에 보게 돼. 그렇지만 지금 네가 지금 당장 그걸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인생에 중요한 책들은 결국은 그 기간이 돼야 보게 되나 봐.


아마 <군협지>를 접게 되면 그때부터 방학 내내 100권 가까운 소설책을 읽게 될 테지. 하루에 두세 권씩, 긴 겨울방학 내내 소설책만 보게 될 건데, 그건 네가 한 가장 좋은 선택이 된단다. 아마 아빠는 “이 미친놈아” 하고 틈틈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공부 좀 해라” 그러고 가실 텐데, 그런 말은 들을 필요 없어. 뭐, 어차피 안 들을 테지만. 이후에 지내보니까, 그 시절에 네가 읽었던 그 소설들이 지금은 내용의 단편들만 기억이 나고,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네. 어차피 한문 제목이라서 제목도 잘 모르고 읽었잖아? 그러나 그때의 난독, 정말 잡히는 대로 읽었던 덕분에 나중에 내가 밥은 먹고 살게 됐어. 뭐, 문학성, 그런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고. 어쨌든 그때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읽으면서 가슴속에 상상이 자리 잡을 수 있던 그 감성 덕분에, 요즘 네가 밥은 먹고 살아. 글쎄, 이 편지를 쓰기 직전에, 작업하던 소설의 3분의 2정도를 막 끝냈어. 평생, 아주 많은 글을 쓰게 될 거야. 그 출발이, <군협지>를읽고 눈물을 흘리면서 몇 달 동안 서원평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생각만 했던 바로 그거 같아. 아마 그 순간이, 우리가 어른이 돼가던 첫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너는 장래 희망도 없고, 꿈도 없을 거야. 영악한 소년이 었으니까, 학교에서 써내라고 하는 장래 희망 칸에 외교관 같은 걸 쓸 텐데, 어차피 그건 우리의 꿈이 아니었고, 정말로는 그런 게 되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꿈이 없는 게, 그게 바로 우리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우리는 꿈을 가져본 적도 없고, 장래 희망은 물론이고, 미래에 원하는 게 없을 거야. 그 대신, 그 순간의 감성에 푹 빠져서, 눈물을 많이 흘리고, 웃음도 많이 웃고, 멍하니 있는 걸 가장 싫어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요즘은 그걸 ‘공감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런 걸 키웠던 것 같아. 꿈 따윈 필요 없어, 그렇게노트에 썼던 거 기억나니? 그 후에 수십 번을 더 쓰게 돼. 연초에 냈던 에세이집에, 거기에도 그렇게 썼어. 정말이지, 꿈 따위는 필요 없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고.


자, 네가 고등학교에 가면, 앞으로도 선생님들한테 수없이 맞을 거야, 어쨌든 우리는 군사정권 시절을 보내는 중이니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 때리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앞으로 한참이 지나야 나와. 엉덩이에 피가 엉겨 붙어서 나중에 물로 떼어내는 고생은 몇 번 더 할 텐데, 뭐. 괜찮아, 그걸로 병신이 되지는 않아. 하여간 군사정권 시절의 일부 남자 선생님들은, 구타 전문가들이니말이야. 한 가지만 부탁하자. 방이 추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책을 볼텐데, 어지간하면 앉아서 책을 보면 고맙겠네. 그때 허리가 안 좋아져서, 지금도 가끔 과로하면 고생이야.


한 가지만 미리 말해줄게. 연애, 앞으로도 어려울 거야. 진짜 연애는 서른 넘어서 겨우 하고, 그때 결혼을 하게 돼. 늦었지만, 지난달에 아이가 태어났어. 성별? 비밀이야. 어쨌든, 긴긴 겨울 내내, 소설책 열심히 읽기 바라. 그 덕에, 미래에도 너는 그냥 세끼 밥은 꼬박꼬박 먹고 살게 돼. 자, 건투! B



우석훈

경제학자

소속 성공회대학교(외래교수)

학력 파리 제10대학교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력 타이거픽쳐스 자문,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총리실, 국무조정실, 산업 심의관실

전문위원, UN 기후변화협약

기술이전 전문가 그룹(EGTT) 위원,

서울산업대학교 산업기술대학원

겸임교수,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

저서 <우석훈 선대인의 누나를 위한

경제>, <F TA 한 스푼>, <1인분 인생>,

<인생기출문제집> 세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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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어린 희정

이벤트/독자 참여 2012. 9. 20. 13:44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글 박희정(재능기부) 

그림 박정은(재능기부)

출처 빅이슈 44호


어린 시절의 나에게 편지를 쓰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 난 지금 서른일곱인데, 지나온 날의 어느 순간에 편지를 보내야 하는 걸까. 어리다는건 어찌 보면 참 막연한 말이잖아. 열 살이면 충분히 어린 걸까? 스무 살이란 나이는? 서른셋쯤 되면 더 이상 어리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는 나이일까? 그렇다면, 어른이란 무엇일까? 그저 육체적 나이가 들어가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떠올렸지. 내가 ‘어린’ 시절에 세운 꿈에 대해. 선생님, 역사가, 미술가, 만화가… ‘직업’으로서의 꿈은 계속 변해왔지만 , 난 결코 변하지 않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도 하나 가지고 있잖아. 그건 바로 ‘정말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것’이지.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자면, 어린아이들의 지지자가 돼줄 수 있는 지혜롭고 따뜻하며 건강한 정신을 가진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 말이야.

한참 어린 시절부터 넌 항상 어른들에게 불만이 많았지. 네 눈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같이 보였으니까.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어른들은 자기감정이 앞서면 미칠 듯이 싸워댔지. 항상 상처받은 자신의 기분만 중요해서 네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잖아. 오히려 너는 하소연의 대상이 되곤 했지. 입에 거칠게 욕을 달고 다니며 남의 집에서 새벽까지 화투판을 벌이는 아저씨들도 지겨웠어. 단칸방이라 도망갈 곳도 없을 때였는데, 속으로 ‘제발 좀 가줬으면’ 하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 대장 노릇하고 남 퍼주기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우리 집은 늘 아저씨들로 들끓었잖아. 복날이면 빠짐없이 그들이 먹을 영양탕 냄새가 집에 진동을 했고, 그런 날이면 난 코를 쥐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갔지. ‘때려잡아 맛있다’는 개 한 마리가 시커멓게 그을려 수돗가에 뻣뻣이 누워 있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네가 본보기 삼을 만한 어른들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어. 그러고 보니 난 한때 신심 깊은 기독교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지. ‘아내들은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곱게 화장하고 남편을 맞으라’ ‘아프리카 흑인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 그런 것이다’는 설교 말씀에 지쳐 돌아 나오기 전까지. 사실, 어른들을 원망하는 마음 이면엔 어른들을 존경하고 또 그들에게 사랑받는 관계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 그거 아니? 고래와 사람은 번식 능력이 사라진 이후에도 오랜 기간 생존하잖아. 일반적인 생물들의 경향성과는 좀 다른데, 고래에 생태에 관한 책에서 그 의미에 대해 해석하기를, 진화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생식을 통해 종족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지혜’를 전수해주는 것이 종족의 번성에 더 효과적이라고 인지한 결과라고 해. 다시 말하면,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전수해주는 것이 존재의 의미이자 의무라는 말이 되는 거겠지.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지혜’를 전수받는 입장에서 젊은이가 어른을 존경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이때 ‘번성’이라는 말은 인간 세계에서 단순히 수적인 증가를 의미하는 건 아닐 거야. 질적으로 인간 사회가변화할 수 있다는 거지. 인권이나 민주주의도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힘겹게 쌓아 올려가야 하는 것이잖아. 결국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네 꿈은 너 자신과 인간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는 거야. 응? 그래서 지금 나는 좋은 어른이 된 것 같으냐고? 글쎄… 그래도 십 대, 이십 대 때보다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이 편지가 네게 닿는다면, 시행 착오의 시간을 조금은 줄일 수 있도록 몇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야. 매일 자신에게 이야기해줘. 넌 귀한 사람이다. 난 네가 좋아. 자존감을 갖는 것은 자만심에 취하거나 자존심을 세우는 것과는 구분해야 해. 결코 타인과 너를 비교하지 마. 네가 귀하니까 모두 귀한 거야. 모두가 귀한 존재니까 너도 귀한 존재야. 네가 남들과 다르게 귀한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타인을 낮게 여기려는 마음과 같은 거지. 또한 자신을 사랑하되, 엄격할 필요가 있어. 엄격하다는 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야. ‘남의 눈에 티끌은 봐도 내 눈에 들보는 못 본다’고 하잖아. 모든 종교에서 자기 성찰과 사랑을 강조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게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인간이 지키기는 참 어려운 거지. 그러니까 노력해보자고. 그리고 항상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대함을 잃지 말기를바라. 관대함은 무턱대고 용서하라는 의미는 아니야. 비판적이되,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또 변화 가능성을 신뢰해야 한다는 거지. 용서를 빌었을 때는 따뜻하게 용서해줘야 하고. 또 때로는 네가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주어야 하기도 해.

못 견디게 힘이 들 때면,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우리는 항상 과정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렴. 실패해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아. 순간에 집중하고,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마. 결과에 매달리면 지칠 수밖에 없어. 변화는 점진적이라 눈에 보이기 어렵고, 또 어떨 때는 퇴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든. 어떤 일의 의미는 훨씬 나중에야 깨닫게 되기도 해. 그럴 때는 네가 세운 원칙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주렴.

아마, 넌 지금 많이 힘들 거야. 고민만 늘고 해답은 보이지 않겠지. 발목 잡는 것투성이에 자기혐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할 테고. 얼마 전부터 항상 불안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들면, 주문처럼 입 속에서 되뇌는 말이 있어. 그러면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이 말을 끝으로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칠게.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것은 반드시 바른 길을 향하게 돼 있다는 말이야.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즐거움도, 시간 속에서 흘러간다. 뜻을 세운 방향이 옳다면, 너는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거야.

form. 2012년 희정


박희정

여성주의저널 <일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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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스물일곱의 기진

이벤트/독자 참여 2012. 9. 4. 14:45

To. 스물일곱의 기진


글 이기진(재능기부) 

그림 박정은(재능기부)

스물일곱 살의 기진. 너의 나이를 두고 누가 어리다고 하겠냐마는, 불혹의 나는 마치 부모의 마음처럼 너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조마조마하고 안쓰럽고 또 대견하구나. 그래, 내 마음 속의 너는 여전히 어리거나 혹은 여물지 않은 연둣빛 청춘이다. 혹시 모르지. 네가 좀 더 조숙해서 일찍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거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엿한 직장에 취직해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했었다면, 아마도 난 너를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거야. 마흔이 다 돼 비로소 가정을 갖고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조금 어른이 된 기분이거든.

너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 중요한 선택을 했다. 앞을 내다볼 수는 없었지만, 그 선택이 네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리라는 것을 너도 막연히 느끼고 있고, 그래서 지금 너의 하루하루는 불안감과 모험심으로 충만할 테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던 너는 미대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서 시사만화를 알게 됐고, 졸업 후에 만화를 배우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그야말로 어설픈 만화가가 됐지. 대단치 않은 인맥으로 몇 군데 단체 회지 같은 곳에 만평을 연재하고 온갖 데 삽화 일을 하면서, 비록 가난하고 초라하지만 자유롭고 순수한 청춘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네가 그럴듯한 사회인이 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어색했지. 거대한 사회 집단에 속해 한 개의 나사못이 된다는 것에 너는 거부감을 느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준비가 아직 덜 됐던 것뿐일까. 그렇다면 그때 네가 선택한 유학이라는 길은, 돌파구였을까 도망이었을까. 스물일곱에 너는 1년 동안 어학을 공부하고 저쪽 나라 대학의 시험을 치르며 유학을 준비했고, 다음 해인 스물여덟 살에 떠났지. 한국에서 휴학까지 합쳐 5년이나 대학을 다닌 네가 다시 저쪽 대학의 1학년으로 입학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지금 내가 다시 생각해도 상당히 무모한 일이었어. 다행히 입학해서 보니 너와 비슷한 상황의 동료들이 더러 있었지만 말이야. 솔직히 이것만은 너를 뜯어말리고 좀 더 요령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조언하고 싶구나. 내가 아는 한 아마 너는 너의 결정을 번복하려 하지 않겠지만, 조금 더 살아보니 우리 인생에는 우회로라는 것이 있더구나. 정통만이 곧 길은 아니라는 거지. 하긴 좀 더 큰 시야에서 보면 유학이라는 것 자체가 네 인생에 우회로이긴 했지만.그러나 나는 언제나 스물일곱의 네 결정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사회를 떠나 적잖이 다른 문화와 방식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 그곳의 삶에 내 몸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란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어. 막 걸음마를 떼고 어눌한 말을 하기 시작한, 16개월 된 우리 아들을 보면 당시의 네가 떠오른단다. 그건 중독성이 있는 듯했어. 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자 자연스럽게 또 다시 떠남을 구상했을 정도니까.(비록구상에 그치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젊은 후배나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너의 결심이 인생에 얼마나 멋진 경험을 선물해주었는지 말해주곤 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경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에 특별한 빛을 더해주는 그런 경험 말이야. 난 2008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몇 개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그렇게 2~3년이 흘러갔어. 하지만 흔히 보따리 장사라고 부르는 시간강사 생활에 나는 점점 피폐해졌지. 유학을 결심하기 전에 느꼈던 무력감, 내가 이 사회의 부적응자인것 같은 패배감이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나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이미 너에게 떠남의 미학을 배운 나이기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그 세계를 등질 수 있었단다. 능력이 없어서 축출됐다는 편이 더 객관적인 표현이겠지만,그 사실조차 쿨하게 인정하고 웃어넘길 수 있었던 건, 바로 너, 스물일곱의 내가 가르쳐준 삶의 처세술이 있었기 때문이지. 지금은 다시 변방에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일의 결과가 아니라 내가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추구하고 버티는지를 실험하는 일이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네 덕분에 남들보다 두 배는 늘어난 청춘 시절을 만끽하고 뒤늦게 꾸린 가정에 대해서도, 너에게 감사해야 할 듯. 내 인생의 반려를 바로 네가 이끌어준 그곳에서 만났고 그리해서 지금의 사랑스러운 가족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나는 인생에서 떠남의 순간이 올 때마나 너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내가 늙고 약해져 있더라도 너는 내 옆에서 용기를 주겠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떠나라고. 그러면 저쪽에는 지금보다 훨씬 흥미로운 일들과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스물일곱의 너는 씩씩하게 나의 등을 떠밀어주겠지.

스물일곱의 기진, 그런 네가 언제나 고맙다.

from. 2012년의 기진


이기진

2000~2008 일본 교토 세이카 대학교에서만화를, 도시샤 대학교에서 미디어학을 전공

도시샤 대학교 미디어학 박사(2010) 만화 연구/평론가 인문만화교양지 <SYNC> 편집장

<SYNC>에 ‘만화, 미디어 그리고 사회’라는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음 만화번역가 

최근 번역작: <우리 마을 이야기> 1~7권, 오제 아키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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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1993년의 열아홉 살 진혁

이벤트/독자 참여 2012. 7. 26. 14:26

To. 1993년의 열아홉 살 진혁

글 김진혁(재능기부) 

그림 박정은(재능기부)


좀 냉소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나는 ‘멘토’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슨 막돼먹은 자존심이었는지 자신감이었는지는 몰라도 자기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늘 살았던 어릴 적 나에게 지금의 나라고 무슨 수로 경청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더구나 논리적이고자 하면서도 늘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을 일삼던 어릴 적 나의 불안정함을 이제는 극복했다 할 수도 없고, 그때보다 무언가가 대단히 나아졌다거나 발전했다거나 이런 느낌이 드는것도 아닌 상태에서 솔직히 어릴 적 내게 지금의 내가 ‘멘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도대체 어릴 적 나에게 나는 어떤 편지를 써야 할까?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의 내가 어떤 처지인지, 20여 년의 세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분명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20여 년이 지난 후의 네 모습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를 해주마.

우선 가장 중요한 사실. 너는 20여 년이 지나 무려 나이가 서른아홉이나 돼 있다! 하하하… 그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믿기지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시간은 그렇게 가더라.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진 말아라. 넌 서른아홉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심지어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서 결혼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고, 직장 생활도 하고 있고, 또 일하는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단다. 무엇보다 그 ‘일’이란 건 네가 꿈꾸던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래 맞아. 한마디로 얘기하면 너의 20년 후는 적어도 나쁘지는 않다. 아니 지금 네가 예상하는 미래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거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냐고?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네가 지금 그러하듯 좌충우돌하다 보니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아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냥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계속 사는 걸 멈추지 않긴 했지 . 물론 나름 계획적으로 살려고 노력은 했는데, 재능 부족인지 노력 부족인지 잘 안 되더라. 맞아, 지금의 네가 가장 너 자신에게 화가 나는 바로 그 ‘대책 없는 태도’ 그대로 살았지. 불안정함, 충동, 지나치게 큰 감정의 기복, 폐쇄적 사회성 그리고 ‘지 잘난 맛’ 같은 걸 나이가 들어서도 극복하지도 통제해내지도 못했다.

근데, 그렇게 살다 보니 얻는 것도 있더라. 뭐랄까 그렇게 살아도 생각보다 대단히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다는 경험이랄까? 맞아, 계획대로 착착 살아내지 않으면 쫄딱 망한다는 투의 이야기들은 확실한 뻥이라는 건 알게 됐지. 또 삶에서 결정적인 기회와 선택은 계획과 무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애초에 삶이란 게 계획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더라. 그러니 지금 너의 좌충우돌이 잘하는 짓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보기도 어려운 거야.

아니 어떤 면에선 그 좌충우돌이 지금 내가 방송 PD가 돼 만드는 프로그램의 많은 소재이자 주제들로 활용(?)되고 있어. 그러니까 바로 지금 네가 지금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들을 가지고 내가 프로그램에 잘 써먹으면서 살고 있단 말이지. 좀 염치없는 말이긴 하지만 고맙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계속 고생 좀 해라. 지금의 나도 좀 먹고 살아야지 않겠냐?

물론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야. 네가 그런 것처럼 지금의 나도 ‘사교성’엔 여전히 젬병이란다. 물론 너만큼 사람들이 많으면 공황 상태에 빠지는 수준은 벗어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사이에선 뭔가 늘 불편해 한단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포기해라. 어차피 극복 안 된다. 지금 네곁에 있는 친구 두 명이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친구 두 명이다. 그래도 한 명이 사회 보고, 다른 한 명이 축가 부르니까 썩 나쁘지 않더라. 그리고 가장 예민한 여자 문제… 그래, 솔직히 말하마. 네가 앞으로 겪게 될 상당수의 연애에서 넌 카사노바처럼 능수능란하기는커녕 거의 매번 지질이의 절정 모드일 것이다. 네 바닥을 보고 난 다음, 그 아래 바닥이 또 있음을 반복해서 보게 될 거라는 거지. 나름 안 그러려고 노력해봤는데, 안 되더라. 그리고 매번 참 많이 아프더라. 뭐 어쩌겠니? 그냥 버텨야지. 20년 정도 버티면 예쁜 아내 만나 결혼 잘 하니까 용기를 잃지 말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마. 어차피 서른아홉이 돼도 열아홉, 지금의 너와 큰 차이가 없으니 지금 네가 원하는 너의 모습이 되지 않는다고 너무 스스로를 구박하지 마라. 물론 이렇게 말해도 귓등으로 흘려듣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부디 1993년의 어느 날에 살고 있을 너,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며… 아,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것 한 가지가 있다. 몇 년 후 할머님 치매 걸리시기 전에 사랑한 다는 말 두 손 꼭 잡고 꼭 해드리렴.B


김진혁

소속 EBS(프로듀서)

수상

2008년 제 20회 한국PD대상 TV교양정보부문 작품상

2008년 <무비위크> 선정 창조적인 엔터테이너 50인

2007 년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정보공익부문

2007 년 방송위원회대상 우수상

경력 EBS <지식채널e>

저서 <지식의 권유-사유와 실천 사이에서 고민하는청춘을 위한>, <감성 지식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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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어릴 적 나에게 보내는 편지> To. 어릴 적 영민

이벤트/독자 참여 2012. 6. 27. 10:33

To. 어릴 적 영민

“지금도 너는 꿈을 꾸고 있다"

글 김영민(재능기부) 

그림 박정은(재능기부)


경북 영주 시내에서도 20리나 더 떨어진 이산면 석포리 번계. 밭에는 하얗게 감자 꽃이 피어 벌, 나비가 날고 앞산에는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던 유월 초순. 점심이면 마당 한쪽의 간이 화덕에 솥을 걸고 하얀 국수를 삶는다. 아직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국수를 말아들고 마당 아래 샘가로 내려와 박바가지로 물을 퍼 국수를 헹구던 이제 겨우 여섯 살 사내아이. 그 다음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세 지방을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다녀, 세 곳의 초등학교를 거쳐서야 졸업을 했던 아이. 중학교 2학년 첫날 1학년 학비를 못 내 제적을 당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할머니와 살며 영주 시내의 한 사무실 급사로 1년 반 정도를 일했다. 열다섯 살이 끝나가는 겨울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소년, 그렇게 네 고향에서의 유년, 초년, 소년 시절은 마침표를 찍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교생이 단체로 극장에서 상영하는 문화영화라는 것을 관람해 생전 처음 영화를 봤지. 그때는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애국가가 나오고 대한뉴스를 보여주던 시절이었다. 뉴스는 건설 현장이나 산업 현장을 순시하는 대통령과 장관 같은 사람들이 나왔다. 이어 상영되는 영화에는 악인과 선인이 등장하고,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성실하고 정의롭게 살아 출세를 해 훌륭한 사람이 되는 주인공이 있었다. 그때 영화를 보며 대한뉴스도 영화내용으로 알고 ‘아! 배우가 되면 대통령, 장관, 장군, 사장, 악당이나 나쁜 적을 물리치는 훌륭한 사람도 될 수 있구나!’라고 여겼고, 그 여김은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됐다. 그래서 나물죽이든 피죽이든 한 끼를 먹으면 그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보란 듯이 살겠다는 것이 꿈이 되고 목적이 됐다.

너는 그 꿈을 이루겠다며 열다섯 나이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추운 겨울날 잠잘 곳이 없어 남의 집 굴뚝을 안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일도 마다치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 주인의 눈에 들어 적지만 월급을 받게 됐고 그렇게 서서히 서울 생활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틈만 나면 무조건 아무 책이나 읽고 쓰며 혼자 공부했지.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익히며 배역을 받아 무대에도 섰다. 또 팝을 좋아해서 종로와 무교동의 제법 큰 음악다방과 음악 레스토랑의 DJ도 하게 됐어. 그렇게 너는 청년의 처음을 시작했고 서울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을 불러 넉넉하진 않았지만 함께 살 수가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넌 다시 음악 레스토랑에서 DJ를 했지. 그 레스토랑의 DJ 콘솔 옆에는 무대가 있고 중간중간 통기타 가수들이 출연해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알게 된 친구 중에 <생일>이란 노래로 유명한 남성 듀오 ‘가람과 뫼’의 작곡을 담당했던 가람 민재홍 군이 있었다. 그 친구의 ‘너의 DJ 멘트 실력이면 글도 잘 쓸 거’란 권유로 노랫말을 써서 작사가로 데뷔했다. MBC <영11>의 구성작가로 활동하던 때 자료 조사차 KBS <젊음의 행진> 녹화장에 방문했다가 마침 입구에서 KBS 공채 성우를 접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은 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 나의 꿈은 배우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까지 숱한 곡절을 겪으며 오지 않았던가? 성우 또한 연기하는 직업이니 도전해보자!” 그 우연한 순간의 결단이 너를 KBS 공채 18기 성우가 되게 했고, 네 나이 스물다섯이던 1983년 5월이었다. 

KBS 성우로 입사한 너는 그 후 방송 3사의 대표적인 성우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많은 자금을 들인 영화 제작과 음반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방송 관계자들의 신세만 지고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요즘은 라디오 드라마나 TV외화가 거의 사라져 예전처럼 성우로서의 활동이 그리 활발하진 않지만, 2011년 연말에 성우로서는 영예로운 2011 ‘KBS 라디오 연기대상 최우수남자연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여섯 살 그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보살피며 툇마루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어설프게 외운 동요를 흥얼거렸다. 너는 단 한 번도 그 어린 시절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지독했던 가난은 넉넉한 삶의 꿈을 꾸게 했고, 그 꿈을 키운 시절이었다고 여겨 이만큼 살아온 듯하다. 21세기를 사는 인생은 결코 1모작이 아닌 2모작, 더 나아가 3모작이다. 아직도 꿔야 할 꿈이 있고 그 꿈을 현실로 이루기에 남은 날이 부족하지 않다. 그러니 또 다른 너를 계발하며 앞으로도 더 큰 꿈을 꾸자.


From. 2012년 아카시아 향기 짙은 때, 성우 김영민



김영민┃성우

1983년 KBS 한국방송 성우 공채 18기

2011년 KBS 라디오 연기대상 최우수남자연기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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