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역 살인미소
"난 이제부터 포기를 모르는 사람"
신사역 8번 출구 오현석 빅판
말수도 적고 사람들과 눈 마주치기 꺼리던 오현석 빅판이 달라졌다.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서 돌아온 뒤 눈빛이 더욱 단단해지고, 목소리도 커지고 종종 살인미소까지 아낌없이 날려준다. 축구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 오현석 빅판 이야기.
글 김나라 사진 염지환
출처 빅이슈코리아 5호
시선은 발끝에. 쭈뼛쭈뼛 굳은 몸짓으로 “노숙인 자활 잡지 빅이슈입니다.”라고 작은 소리를 흘리던 오현석 빅판이 빅이슈를 팔기 시작한 지 이제 석 달. 지금은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냐는 듯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목소리엔 자신감이 묻어난다. 최근엔 새로 시작한 임시 빅판의 교육을 맡았다. 잡지가 더 잘 팔리는 자리를 임시 빅판에게 내주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사이사이 던진다.
“임시 빅판이 하는 거 보면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고, 대신 팔아주고 싶고 그래요. 옆에서 순대 파는 아주머니도 왜 도와 주지 않냐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되니까요. 자기가 직접 팔아야 자활 의지가 생기고 보람도 느끼는 거라서.”
처음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 왔을 때나 임시 빅판 때를 떠올려보니 감회가 새롭다. 무료 급식소에서 우연히 안내문을 보고 ‘고시원도 지원해 주고, 300만 원을 모으면 임대주택도 제공해 준다고? 아! 내게 맞는 일 같다.’고 생각해 용기를 내어 빅이슈 사무실로 찾아왔다. 하지만 거리에서 잡지를 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눈빛은 무심했다. 무뚝뚝하기만 한 행인들의 뒤통수에 자꾸만 기가 죽어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3년 동안 거리 생활에서 배운 건 쉽게 포기하는 버릇이었다. 이번에도 금세 포기하려던 오현석 빅판의 생각을 돌린 건 한 장의 축구경기 초대장.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FC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에 빅판들이 초대받아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다.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축구 경기를 볼 수 있게 배려해 주고…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신사역 8번 출구로 출퇴근하길 2주가 되자 빅이슈에서 한 달치 고시원비를 지원해 주었다. 고시원에서 지내게 되면서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축구는 오현석 빅판과 빅이슈를 이어주는 특별한 끈이다. 9월 브라질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서는 4골을 터트려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 중 최다 골을 기록했다. 난생 처음 외국에 나가 긴장도 많이 했지만 거리를 지나며, 경기를 하며 한국팀을 알아봐주는 브라질 사람들이 “꼬레아”를 외칠 때마다 어깨가 펴졌다. 브라질에서 2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오현석 빅판은 더이상 시선을 땅에 떨구던 그이가 아니었다. 눈빛에는 결의마저 감돌고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싶게 활기가 느껴졌다.
“한국 대표로 외국에 가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여기서 지혜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더 좋은 생각도 하게 되고요,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책임감 이런 게 없었는데… 이제 좌절하고 힘들다고 바로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두 번 더 생각해 마음을 고쳐먹으려고요.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맨 처음 《빅이슈》로 번 돈으로 무얼 했는지 묻자 힘들게 번 돈이라 안 쓰게 되더란다.
“요즘에도 저금을 꼭 해요. 고시원비도 미리 냈어요. 혹시나 늦어지고 그러면 사무실 사람들이 곤란해질까 봐.”
버는 돈으로 제일 먼저 고시원비부터 따로 모아두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웃는 오현석 빅판. 책임감이란 때론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또한 누군가의 기대를 받고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오현석 빅판이 느끼는 책임감은 그런 따스한 묵직함일 게다.
빅판으로 6개월 동안 착실히 300만 원을 모으면 마련해 주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 보일러 자격증 따서 기술자로 취직하는 것. 오현석 빅판이 지금 꾸고 있는 꿈이다. 아니 조만간 실현할 계획이다. 좋아하는 메이저 리그의 야구 중계를 PC방이 아닌, 내가 일해 번 돈으로 마련한 집 따뜻한 아랫목에 모로 누워서 보며, 그렇게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지금 신사역 8번 출구 앞에서는 오현석 빅판이 그 계획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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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amel75 2010.11.03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홈리스 월드컵은 그냥 공만 차는 대회가 아니었군요.
오현석 빅판님 사연 읽고 나니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꿈, 이루어질 그날을 응원합니다.
빅이슈코리아도 만세!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