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차우진(재능기부)
그림 현하나(재능기부)
열아홉 살이었나, ‘마흔 살이 돼도 청바지를 입고 다녀야지!’란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아닌데 그때는 왠지 인생의 큰 각오를 다진 기분이었다. ‘트로트 따윈 듣지도 말고 록 음악만 계속 들어야지!’란 생각도 마찬가지. 마흔 살을 겨우 2년 앞 둔 나는 여전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청바지나 사입고 한 달에 기십만 원 어치의 CD나 사면서 살고있다. 열아홉 살 무렵과 달라진 건 이젠 그에 대해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가끔 ‘이게 사는 건가!’란 생각은 들지만, 뭐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별 느낌이 없다. 다시 말해 열아홉 시절의 각오는 아마도 나이 먹고 성장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요즘 다시 늙음에 대해 생각한다. 분명히 체력이 떨어졌고 몸의 반응이 느려졌음을 인지하고 있는데 한편 이 몸의 문제가 감각과 감수성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 같다. 특히 이 변화는 음악을 들을 때 절감하는데 최근에는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이 그랬다.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은 지금 각종 차트의 순위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단지 몇 곡이 순위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거의 전 곡이 1위부터 10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처음엔 <슈퍼스타 K>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와입상 후 엠넷의 행사 참여를 거부한 행보로 얻은 반사이익 때문이라 여겼다. 이런 생각의 근거에는 사실 음악적 매력이 내게 딱히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인기가 잦아들기는커녕 더 거세지는 지금으로선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할 뿐이다.
물론 반복해서 들으면 귀에도 꽂히고 잘 들리기도 하는데, 또한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지점도 찾을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 내가 감지할 수 없는 매력을 사람들, 특히 이십 대 초반, 그중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감지하고 또 반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 이것은 일종의 위기감이다. 이 음악에 대해 리뷰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중문화 언저리에 적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는이 감각의 차이가 보다 큰 비중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의 몸은 경험과 감각이 형성되는 근본이다. 그래서 나는 몸의 경험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홍대 앞의 음악을 얘기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홍대 앞을 거닐거나 그 동네에서 노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경험이 작동한다. 새로 생긴 가게들, 처음 보는 포스터들,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 표정, 몸짓들이 모두 어떤 감수성으로 치환된다. 트렌드라는 건 그렇게 몸에 새겨지기 마련이고 나처럼 그에 대해 글을 쓰거나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감각을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TV를 열심히 보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그런데 버스커버스커의 인기에 대해선, 이 음악의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음악의 인기가 구성된 맥락에 대해서도 감을 잡지 못하겠다. 경험적으로 어떤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아차, 이제 내가 정말 늙었구나’ 싶다. 이 위기의식을 어떻게 돌파할지 나는 정확히모르겠다. 이게 과연 노력으로 상쇄될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물론 버스커버스커의 대중성에 대해 이런저런 사례들을 수집하고 감상들을 채집하며 나름의 맥락을 정리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연구’의 과정이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비평은 이 수집과 채집으로부터 이론을 발견해내는 연구보다는 동시대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의미를 파악해내는 일에 가깝다. 연구가 사후적이라면 비평은 현재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개인적인 변화가 무척 낯설다.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 ‘정말 좋잖아!’거나 ‘난 별론데?’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삼십대후반의) 나는 여기서 나이 먹고 도태돼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B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weiv> 에디터, <매거진 T> 기자 등을 거쳐
여러 매체에 음악과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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